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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차별 철폐 없이 복지국가 없다

  • 2011-10-14 08:59:11
  • 110.11.255.208
파견법 무용지물

"직접 고용" 판결도 무시… 대기업들 되레 징계ㆍ해고

차별시정 제도 허점

신청자 노출시켜 불이익… 노조 대리신청 허용해야

제도 개선ㆍ연대 필요

단협 적용 확대하고 정규직 노조의 배려 절실


"차라리 좀더 일찍 장사를 시작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아요."



↑ 특수고용노동자인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의 한 조합원이 13일 서울 소공동 환구단앞에서 해고자 복직 및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9년 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두 달 전 5평 규모의 식품가게를 시작한 김주원(29ㆍ가명)씨. 김씨는 직장생활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최근까지 그는 5,6개의 회사를 옮겨 다녔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파견회사에 소속돼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 등에서 제과ㆍ식료품 전시와 판촉업무를 담당했지만 청소 같은 잡무는 늘 그의 몫이었다. 이틀에 한 번 꼴인 할인행사 때는 1,2시간씩 일찍 나오거나 야근을 했지만 법으로 보장된 야근수당을 받아본 적도 없다. 고용보험국민연금 혜택도 전혀 받지 못했다. 하루 9시간, 연월차 휴가 없이 주 6일 일하며 김씨가 받은 월급은 정규직의 50~70%에 불과한 100만~120만원. 김씨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희생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직장생활을 그만뒀다"고 털어놓았다.

선거철을 맞아 복지국가 논의가 한창이지만 김씨 같은 이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분배의 과실에서 소외된 비정규직 숫자는 줄지 않고 차별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2009)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21.3%로 26개 OECD 회원국 중 4위다.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비율은 62%로 1위였다. 2001년 정규직의 52.6% 수준이었던 비정규직의 임금은 지난해 46.9%로 떨어졌다. 주 48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비율도 비정규직(27.6%)이 정규직(15.4%)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일자리가 없어 마지못해 비정규직을 택하고, 정규직보다 더 오래 일하면서 임금은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법 있어도 무용지물

법 규정만 보면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직접고용된 근로자와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근로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파견법 규정을 비롯해 현행법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에 따라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무법천지다.

노동계 최대현안인 사내하청(하도급) 문제가 단적인 예다. 기계ㆍ자동차ㆍ조선 등 대기업 50% 이상이 사내하청을 쓰고 있는데 대기업은 직접고용한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고집한다. 법원이 잇따라 직접고용 판결을 내렸지만 기업들은 도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징계하거나 해고했다.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다 지난 3월 해고된 사내하청노동자 김호선(52)씨는"1주일에 두 번씩 주말에도 야근을 해가며 회사를 위해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정규직 절반의 임금과 해고"라며 "현대차가 1만명이 넘는 사내하청노동자를 고용해 부당하게 가져가는 이익이 한해 5,000억원은 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업은 막무가내로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정부는 이를 규제할 아무런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불이익을 받으면 차별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 제도도 허점투성이다. 차별을 겪은 노동자만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내게 돼 있어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2009년 차별시정신청을 했다가 농협에서 해고당한 박형철(35ㆍ가명)씨는 "조사관들이 회사 관계자 40~50명이 둘러싼 사무실에 나를 혼자 앉히더니 '차별신청 하셨네요?'라고 따지듯 묻더라"며 "이런 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차별시정신청사건 105건 중 차별이 인정된 사례는 24건(22.9%)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신청자가 노출되지 않도록 노동자대표나 노조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단체협약 적용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산별교섭을 강화하고 낮은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약 2%)을 높이면 비정규직 차별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OECD 등 국제기구는 노사교섭을 초기업 단위로 할수록 임금불평등이 해소된다고 결론짓고 있다"며 "노조가입과 상관없이 단체협약을 적용받도록 효력확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한 지역 동종 근로자 3분의 2 이상이 단협 적용을 받을 때에만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3분의 1에도 적용하도록 돼있어 지나치게 문턱이 높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협약 당사자인 노사단체 중 하나 이상이 효력확장을 요구하면 협약의 적용을 확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정규직 노조가 함께 압력을 가할 필요도 절실하다. 1990년대 초 호황기에는 기업이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할 여유가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고 정규직 노조는 자신의 이익 지키기에만 골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실질적인 산별교섭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배려하는 연대가 있어야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격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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